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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조작된 기억, 당신의 과거는 완벽하지 않다

by 어코코바이브 2024. 9. 11.

 

기억은 인지 과정을 통해 생성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완벽하지 않다. 기억은 사건을 단순히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왜곡된 기억을 형성한다. 기억은 주로 주의, 지각, 정보의 부호화 및 출력 과정에서 변형될 수 있다. 각 과정에서의 오류나 편향은 결과적으로 왜곡된 기억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특정 사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부정확하게 지각한 정보는 처음부터 왜곡된 기억으로 저장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저장된 기억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하거나 다른 정보와 섞이면서 변화될 수 있다. 이런 불완전성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한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게 만들며, 그 기억마저도 지속해서 바뀐다.

가짜 기억

가짜 기억은 우리의 인지 구조와 신경학적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사건을 사실처럼 기억할 수 있는데, 이는 주로 암시적 정보 또는 반복된 상상과 관련이 깊다. 심리학자들은 법정에서 증언이나 수사 과정에서 가짜 기억이 얼마나 쉽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를 통해 이 현상을 밝혀냈다. 가짜 기억이 형성되는 원인으로는 첫째, 암시나 질문의 방식이 있으며, 둘째로는 기억의 재구성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적으로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특정 경험을 인출할 때, 관련되지 않은 정보까지 결합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는 뇌가 하나의 사건을 기억할 때 그와 연관된 다른 사건이나 정보도 함께 활성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기억의 재구성

기억은 저장된 상태로 그대로 보존되지 않고, 기억하려 할 때마다 기억의 재구성 과정을 거친다. 이때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맥락이나 정보에 의해 변화될 수 있으며, 이를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한다. 과거의 기억을 꺼낼 때 우리는 새로운 정보나 감정을 덧붙일 수 있는데, 이는 기억의 정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어, 긍정적인 현재 상황에서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더 덜 고통스럽게 재구성될 수 있으며, 반대로 현재의 부정적인 상황은 과거의 긍정적인 기억을 부정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후방 간섭’이라고 부르며, 이 현상은 우리의 기억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집단 기억 왜곡

기억은 단순히 개인의 인지 과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집단 내에서의 토론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억이 수정되거나 왜곡되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집단 기억 왜곡 또는 '전염성 기억'이라고 불린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집단의 합의나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수정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역사적 사건이나 정치적 사건을 둘러싼 기억에 영향을 미치며, 집단 내에서 형성된 기억이 개인의 원래 기억을 덮어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집단 기억 왜곡은 우리가 기억하는 현실이 단순히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억 왜곡의 진화적 이점

기억 왜곡은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간주할 수 없으며, 오히려 심리적 적응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기억을 왜곡하는 경향을 발전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기억에서 희석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현재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이나 스트레스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기억을 왜곡함으로써 자존감을 유지하거나 긍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기억이 항상 정확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왜곡된 기억이 개인의 정신적 회복과 긍정적 감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기억 왜곡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진화적 관점에서 적응적 기능을 할 수 있는 요소로 볼 수 있다.

기억 왜곡의 심리적, 사회적 의미

기억은 고정된 정보 저장소가 아니라, 인지적·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유동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기억 왜곡은 가짜 기억, 집단 기억 왜곡, 그리고 현재 상황에 따른 기억의 재구성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기억의 왜곡은 때로는 개인의 심리적 건강을 돕는 긍정적인 적응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는 기억이 항상 진실을 반영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특히 법적 증언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의 신뢰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억 왜곡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심리적 안정을 위한 필연적인 결과물일 수 있다.